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월세살이 전전하다 결국 집을 사야겠다 마음먹었다는 이야기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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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에서 태어나 부모님 슬하에 21년을 자랐다.
재단사로 시작한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며 우릴 키웠다.
어느날 카센터를 하던 동네 친구분이 아버지께 동업을 제의했고, 사채를 써서 가게를 유지중이라는 사실도 모른채 아버지는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엄마아빠는 부부와 동반 모임에도 가고,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서 퇴근하던 길이 몇 번 이어졌고,
영화를 보시느라 늦게 집에 오시기도 했다. 그 둘 사이 여가생활이라는게 처음 생겼다.
잠깐의 행복이 있었고, 가게로 사채업자들이 찾아오더란 이야기를 넌지시 들은 뒤 반지하방 보증금만 겨우 챙겨 이사를 갔다.
동업자 아저씨는 암에 걸렸고 부모님은 동업하면서 냈던 투자금은 돌려달라 말도 꺼내보지 못했다.
아저씨는 얼마 안되어 돌아가셨고 엄마는 발품팔아 개인회생을 신청하셨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트럭에서 배추, 딸기, 갈치를 팔며 돈을 버셨고, 오빠와 내가 대학생이 되자 부모님은 서울에서 도망치듯 이사하셨다.
내돈은 누가 지켜주지 않는 다는 사실을 여전히 모르시는 부모님은, 집주인과 부동산 말만 믿고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계신다.
부동산만 믿고, 다음 세입자가 오길 기다리신다.
늘 내 돈을, 내 의사를 남에게 맡기는게 문제였던가.
그런 부모님 문제를 적극해결해 주지 않는 나는 뭐가 다른가.
졸업후에는 첫 자취방 보증금과 3개월치 월세를 지원받고 뛰쳐나왔다.
회사는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고, 대기업 계열사를 약속하며 좀 기다려 달라는 말만했다.
은행대출을 받아 월세를 냈다. 퇴사후에 퇴직금과 함께 지급받은 밀린 급여는 대출을 값고 나니 수중에 몇푼 남지 않았다.
4년 정도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지금 남편을 만나 보증금 오백만원 겨우 들고 시집을 왔다.
작은 빌라 전세를 얻어 8년을 살았고.
처음 결혼할때 보다 자산은 두배가 되었지만 되려 그때 보다 선택지는 더 줄었다.
모은다고 열심히 모았어도 24평 짜리 아파트 매매가의 절반도 모으지 못했다.
결혼 생활 내내 아팠고, 2년은 소득이 없었다. 몸이 좀 나아져 아르바이트를 다닌지도 1년이 되간다.
40년 가까운 나이가 되었어도 아직도 때가 되면 철새처럼 이사를 고민하고, 늘 내 형편에 맞는 집은 없었다.
무료로 오픈된 부동산관련 유튜브를 보고나니 서울에 대출없는 자가는 몇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름난 부동산강의는 형편에 맞지 않을 만큼 비쌌다.
손품팔아, 발품팔아 임장을 다니게되었다.
집을 매매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제일 안전한 방식을 선택했다.
빚으로 빚을 사기로 했다.
남편과 상의 끝에, 아파트 30년 상환 노예로 원금 3억에 빚 2억을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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